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부 솔로몬 해전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1942년 8월 7일에 미 해병대는 과달카날, 툴라기, 플로리다, 가부투-타남보고섬에 성공적으로 상륙하여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비행장을 점령하면서 [[과달카날 전투]]가 시작되었다. 이때 상륙을 지원한 제61기동부대는 [[새러토가]], [[엔터프라이즈(항공모함)|엔터프라이즈]], 그리고 [[와스프급 항공모함|와스프]] 세 항모가 중핵인 부대였다. 근데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었던 제61기동부대가 연료 보급을 이유로 전선에서 이탈, 남아서 수송선을 호위하던 제62기동부대가 미 해군 최악의 전투로 꼽히는 [[사보섬 해전]]에서 큰 피해를 보았고, 미군은 솔로몬 제도 주변의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솔로몬 제도 주변 해역은 일본 해군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. 사보섬 해전으로 인해 과달카날섬에 상륙한 미 해병대는 외부의 지원이 끊어진 채 고립되었고 상황 타개를 위해선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비행장을 완공해서 과달카날 근해의 제공권을 장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. 그리하여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물자와 부분적으로 재개된 보급으로 버티며 비행장 건설을 진행했고, 갖은 고생을 한 끝에 마침내 완공되어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해져 항공전력 전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. 한편 대본영은 과달카날이 털렸다는 소식을 듣고, 미드웨이섬을 공격할 예정이었던 일본군 제28연대에 공격 명령을 내려 [[테나루 전투]]가 벌어졌다. 전투가 끝나가는 와중에 [[야마모토 이소로쿠]] 제독은 더 많은 병력을 과달카날에 수송하고 나아가 미 해군의 함대를 쳐부수기 위해 정규항공모함 2척, 경항공모함 1척, 전함 2척, 그리고 다수의 순양함 및 구축함들로 이루어진 함대를 출격시킨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